200조 시장 놓고 '5촌 당숙 vs 조카' 정면충돌…삼성 '어부지리'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3-08-05 15:00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리사 수 AMD CEO. 둘이 합쳐 시가총액 약 1700조원 규모 기업을 경영하며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거물이란 것 외에도 공통점이 적지 않다.

두 경영자는 1960년대 대만 타이난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미국으로 건너 갔다. 입학·졸업이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 미국 명문대에서 전기공학 학위(젠슨 황 스탠퍼드대 석사, 리사 수 메사추세츠공과대 박사)를 따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젠슨 황은 AMD를 거쳐 1993년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했다. 리사 수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IBM, 프리스케일 등 유명 정보기술(IT)·반도체 기업에서 일한 뒤 2014년부터 AMD를 이끌고 있다. 백인 중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아시안, 특히 리사 수는 여성이란 핸디캡을 딛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메리칸드림'의 표본으로 꼽힌다.
미국 1-2위 반도체기업끼리 격돌
두 경영자는 지금까지 각자 속한 기업의 고속 성장을 이끌며 실리콘밸리에서 대만의 위상을 높였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3일 기준) 1조990억달러(1439조6900억원)로 반도체기업 중 세계 1위 기업이다. AMD는 1822억달러(238조6820억원), 반도체 시총 6위로 오랜 경쟁사 인텔을 눌렀다.

엔비디아와 AMD의 주력 사업은 크게 겹치지 않았다. 각각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로 달랐기 때문에 충돌할 일도 많지 않았다. AMD는 오래전부터 GPU 사업을 했지만, 비중이 엔비디아만큼 크진 않았다.

앞으론 얘기가 좀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반도체 산업에서 기업 간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엔비디아가 CPU에도 손을 대더니, 자사 GPU와 CPU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받아 패키징한 'AI 가속기'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AI 가속기는 생성형 AI 등을 구현하고 실행하기 위한 전용 하드웨어(반도체)로 AI용 데이터센터(서버)에 탑재돼 데이터 학습·추론을 담당한다. GPU라고도 불리는 엔비디아의 'H100'이 대표적인 AI 가속기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H100과 전 세대 제품인 'A100'을 앞세워 AI 가속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오픈AI의 챗 GPT용 서버에도 A100, H100이 들어간다. AI 가속기 시장은 2023년 300억 달러(약 39조원) 수준에서 2027년에는 1500억 달러(약 196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엔비디아 제품보다 성능 2.4배 낫다"
엔비디아의 독식을 AMD가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원래 AMD는 데이터센터용 서버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인텔 천하였던 데이터센터 CPU 시장에서 약 30%까지 점유율을 높이며 위상을 높였다. GPU와 관련해서도 나름대로 시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엑스박스 등 게임 콘솔용 '라데온' GPU로 이름을 떨쳤고 스마트폰용 GPU와 관련해서 삼성전자와도 협력하고 있다.

2022년 2월엔 AI 반도체 경쟁력을 높여줄 반도체기업 '자일링스'를 인수하며 AI 가속기 시장에 본격 진출을 준비했다. 리사 수와 AMD는 지난 1월 AI 가속기 'MI300'을 공개했다. 전작인 MI250 대비 AI 성능이 8배 빠르다고 발표했다.

지난 6월엔 본격적으로 업그레이드된 'MI300X'를 공개했다. MI300X의 메모리 용량은 192GB로 엔비디아 H100의 120GB 메모리를 능가한다. 리사 수는 "MI300X 칩은 AI 모델을 위해 설계됐으며 엔비디아 H100 대비 2.4배의 메모리 밀도와 1.6배 이상의 대역폭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이달 초 리사 수는 "올해 4분기에 MI300X를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또 "엔비디아의 강점으로 꼽혀온 AI칩 소프트웨어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다"며 "AI 경쟁에는 '여러 명의 승자'가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AMD가 AI 가속기 시장에서 선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씨티는 "서버 CPU 점유율 증가할 것이고 AI에서 기회가 있다"고 평가했고 모간스탠리는 "AMD가 아직 초기 시장인 AI에서 강력한 기회를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내년에 MI300X 판매가 의미 있게 증가할 것이고 GPU 매출이 약 20억달러에 달할 것"(키방크), "데이터센터 가속기 시장 침투 성공"(골드만삭스) 등 긍정적인 의견도 나왔다.

일부에선 90%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AMD가 빼앗아 오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펜하이머는 "엔비디아의 선도적인 A100·H100 가속기 및 소프트웨어 생태계에 비해 AMD의 MI300이 AI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까지는 험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5촌 당숙과 조카의 피할 수 없는 승부
흥미로운 점은 두 사람이 당숙과 조카, 즉 5촌 관계인 '인척이라는 점이다. 젠슨 황의 외사촌 누님이 리사 수의 어머니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사 수는 2020년 'CES 2020'을 앞두고 주최 측과의 인터뷰 '리더십의 달인: 리사 수 박사(Masters of Leadership: Dr. Lisa Su)에서 "우리는 먼 친척(we are distant relatives, so some complex second cousin type of thing)"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나 AMD의 칩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를 놓고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TSMC가 GPU, CPU 등을 생산하는 5nm 이하 '초미세공정' 생산 라인의 생산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GPU, CPU, HBM 등 서로 다른 칩을 AI 가속기처럼 하나의 반도체처럼 작동하게 하는 '첨단패키징'도 중요해지고 있는데, TSMC의 첨단패키징 생산능력도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다. TSMC가 '첨단패키징 용량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지만, 가시화되는 건 내년이 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로선 TSMC에 웃돈을 얹어주고라도 '우리 칩을 먼저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엔 HBM, 첨단패키징 기회 커져
젠슨 황과 리사 수, 엔비디아와 AMD의 'AI 가속기' 정면충돌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엔 좋은 소식으로 평가된다. 두 유명기업의 경쟁으로 AI 가속기 시장이 더 커지고 기술력이 고도화되면, 여기에 들어가는 HBM 수요도 커질 수 있어서다. HBM은 D램 4~12개를 수직으로 쌓아 용량과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제품이다. 엔비디아 H100, AMD MI300X 등의 가속기에 들어간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트렌드포스 최신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49%, 삼성전자는 46%)

삼성전자는 첨단패키징 사업에서도 수주 물량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GPU, CPU 등 로직반도체와 HBM을 묶는 첨단패키징에서 TSMC의 대안으론 사실상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현재 엔비디아는 삼성전자로부터 HBM과 첨단패키징 서비스를 턴키로 공급받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MD도 첨단패키징, 더 나아가 CPU와 GPU 위탁생산과 관련해 TSMC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삼성전자에 물량을 배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존 테일러 AMD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AMD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의 관계를 더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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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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